무기력한 봄날, 춘곤증과 우울증의 경계 [권의정 원장 칼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의 영향으로 한동안 계절이 바뀌는 것을 잊고 살았다. 사람들도 자주 못 만나고 집에서 바쁜 일 없이 지내다 보니 언제나 기분은 가라앉아 있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자꾸 졸음이 쏟아지고 눞고만 싶다.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모든 것이 시큰둥하니 재미가 없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누군가 말을 걸어도 귀찮다. 무기력한 나날, 과연 이 모든 것이 춘곤증 때문일까?
춘곤증, 계절 변화의 적응에서 오는 피로감
‘춘곤증(春困症)’이라고 하면, 따뜻한 봄날 양지바른 곳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의학적으로 춘곤증은 질병으로 보진 않는다. 계절이 바뀌면서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일종의 피로 증상이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그저 겨울 동안 움츠려 있던 신체가 봄철 따뜻해진 외부 온도에 적응하면서 호르몬 등의 변화를 가져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 근육이 이완되고 체내 호르몬 변화가 촉진되면서 감정 변화와 신체의 나른한 느낌을 유발하는 것이다. 봄이 되면 활동량이 증가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며, 따라서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등 각종 영양소가 더 필요하게 된다. 봄철에 적절한 영양 섭취가 이뤄지지 않으면 춘곤증이 심해질 수도 있다.
갱년기 주부와 노인, 춘곤증 유심히 살펴라
춘곤증은 대표적인 증상인 피로감이나 졸음 외에도 식욕부진, 소화불량, 현기증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갑자기 식욕이 없고 기운이 처지며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는 등 마치 갱년기 증상과 유사한 증세를 보일 수 있다. 특히 겨우내 운동 부족이나 만성 피로에 시달린 경우 종종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피로감을 단순히 춘곤증으로 넘겨서는 곤란할 때도 있다.
과도한 업무, 부족한 수면 등으로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30~40대 직장인, 살림과 양육, 가정 불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40~50대 주부, 노화(老化)와 함께 무기력에 시달리는 노인의 경우 춘곤증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 좋으며, 춘곤증 자체는 병이 아니지만, 피로한 증세를 모두 춘곤증으로 넘겨선 안된다. 종종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춘곤증으로 잘못 알고 무심코 넘기다 우울증과 불안증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춘곤증 증세, 이럴 경우 우울증은 아닐까
춘곤증으로 인한 무기력감과 피로, 나른한 기운 등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호전된다. 대개는 한달 이내에 사라진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이 한달 이상 지속되거나 오히려 더 심해진다면 우울증이나 불안증의 증세일 수 있다. 우울증 환자들도 불면증이나 과다 수면, 무기력감, 의욕이나 기력 저하가 흔하며, 특히 노인들은 표현을 적게 하고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그냥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가족들은 봄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오해하게 되며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가면성 우울증이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이런 경우 춘곤증과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춘곤증이 너무 오래 가거나 악화된다면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의심해 본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 갱년기 주부, 노인이라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속적인 우울감 / 의욕 또는 흥미 저하 / 불면증 등 수면장애 / 등을 보인다면 정확한 진단을 받도록 한다.
춘곤증,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춘곤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증상이다. 좀 더 효과적으로 춘곤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생활 수칙을 잘 지킨다. 첫째, 규칙적인 식습관을 갖는다. 둘째, 가벼운 운동을 주 3회 이상 한다. 셋째, 비타민이나 채소를 섭취한다. 미나리나 달래, 도라지 등은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넷째, 적절한 수면을 유지한다. 수면의 질이 좋지 못하면 당연히 낮동안 졸음이 심해지고 이는 춘곤증과 구별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곤증이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해보는 것이 좋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환자는 때로 우울 증상을 알아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며, 봄에는 춘곤증이 우울증과 혼동되기 쉬우므로 가족이나 친구 등 주위 사람들 도움이 더 중요하다.
만약 감정 변화와 무기력으로 인해 학업 또는 업무 등 일상 생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자살 생각이 들거나 실제로 시도한 적이 있는 경우라면 정확한 평가와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치료 방법은 정신 치료, 인지 행동 치료, 약물 치료 등으로 나뉜다. 우울증 환자의 70~80%는 호전이 될 수 있다.
(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권의정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