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권의정 원장)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 핑계를 대며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시간들이 오히려 평안했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밖으로 나가는 일도 귀찮고 싫어졌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고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런 상황, 괜찮은 것일까? 혹시 대인기피증이나 대인공포증은 아닐까?
우울증으로 대인기피증이 올 수 있다
언젠가부터 혼자 있을 때 더 안심하고 편안해졌다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를 같이 만나자고 해도 낯가림이 심하다는 핑계로 거절하고, 단체 모임을 정하면 그날 다른 일이 있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전화 통화보다 문자가편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부담이 느껴지는 상황. 만약 사람을 피하는 것이 단지 그때뿐이거나 귀찮아서가 아니라, 정말 내키지 않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며, 심지어 두렵기조차 하다면 더 큰 정신적 문제로 확대되기 전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
일상용어로 사용하는 대인기피증은 일종의 관계 기피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 많은 곳에 가는 일이 어떤 이유로 극도로 싫거나, 두렵고 불안해서 자꾸 피하려고 한다. 우울증, 불안장애가 있는 경우 흔히 대인기피증을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로 힘들 때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기 싫다’,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피한다’며 무기력과 대인기피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우울증, 불안이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욕도 감소하고 관계를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
성격적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도 있다. 바로 ‘회피성 인격’과 같은, 성격 문제의 하나로 보는 ‘은둔형 외톨이(폐쇄 은둔족)’이다. 일본 ‘히키코모리’와 같은 표현인데, 보통 6개월 이상 집 안 또는 자기 방 안에 틀어박힌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관계를 맺지 않고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사회학자들은 핵가족화, 인터넷의 발달, 배송의 편의성 등이 보편화된 데다, 가정의 붕괴, 부모의 학대, 학교 폭력, 사회 부적응, 게임 중독 등 다양한 요소들이 청소년, 청년들을 은둔형 외톨이로 만들어냈다고 본다.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은 하루 종일 자기 방에서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게임에 몰두하고, 가족들이 움직이는 낮에 잠을 자고 밤에 조용히 움직이는 일이 많다. 젊은 나이에, 내향적이거나 소심한, 그래서 회피성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서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한창 사회 활동을 해야 할 30대도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사람보다 SNS를 통해 소통하거나 게임에 몰두하면서 ‘집콕’하는 일이 늘어났는데, 코로나19가 이러한 경향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은둔형의 대인 기피는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여러 정신 질환으로 인한 대인 기피와는 구별이 필요하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할 뿐 사람이나 사회 상황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없다. 반면 대인기피증은 무기력감, 자신감 저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두려움, 공포를 차단하기 위해 바깥세상과 단절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우울이나 불안은 은둔형에 비해 스트레스 상황이 더 명확하고 시작 시점이 더 분명할 수 있다. 우울이나 불안에 따른 대인기피증은 약물 치료에도 더 효과적이다.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이 대인기피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의한 대인기피증도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경험이나 테러, 아동기 성적 혹은 신체적 학대, 커다란 사고 또는 자연재해 등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큰 트라우마(Big Trauma)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을 말한다. 이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기간 심리적 고통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나 사회 상황을 피하게 된다. 트라우마에 따른 불안장애, 수면장애, 공황장애, 해리증상, 우울증 등과 같은 여러 정신적 문제가 동반되다 보니 결국 사람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트라우마에 의한 대인기피증은 단순히 귀찮고, 하기 싫다의 문제가 아니다. 두려워하는 상황에 노출되는 상상만으로도 심각한 불안감을 느낀다. 불안이 심하면 식은땀, 현기증, 심박수 증가, 호흡 곤란, 비현실감 등 공황발작 형태의 증상을 보일 수 있다. 당연히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다 보니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대인기피증, 시발점인 정신적 문제로 해결책 찾아야
이렇듯 대인기피증은 다양한 시발점을 가지고 있어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정신 질환이 그러하듯 대인기피증 역시 조기에 개입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대인기피증에 대해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해서는 안 된다. 대인 기피는 우울증, 불안장애, 성격장애, PTSD 등 여러 정신 질환의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성격이나 문화적 변화에 따른 증상이라면 전문가 상담이나 인지행동 치료 등이 우선 권장될 수 있다. 하지만 우울이나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부수적으로 사람을 기피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 치료를 함께 시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대인기피증은 일단 급성기 불안이 진정되는 게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약물 치료로 불안이 약간만 감소해도 다음 단계로 상담이나 인지행동요법을 적용하기 수월해진다. 참고로 과거에 비해 약물과 인지행동 치료 혹은 EMDR(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요법)치료 등 통합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건강의학과가 늘고 있다. 대인기피증을 보이는 환자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단지 귀찮은 탓에 혹은 번거로운 탓에 사람을 피하고 문밖 나서기를 꺼려하는 일, 아직은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오래 지속되면 어느새 무력감에 휩싸이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질지 모른다. 사람, 세상과 직접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도움말 : 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권의정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