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권의정 대표원장)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녹다운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일중독자, 완벽주의자 소리도 들었건만 이제 손 하나 까딱하기 싫다.
너무 무리한 탓이라고,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루 이틀 쉬면 낫겠지 싶었는데, 웬걸 도통 피로감과 무기력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바쁜 현대인,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무력감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 무기력증, 심한 불안감과 자기혐오, 분노, 의욕 상실 등에 빠질 때가 있다. 미국의 정신분석 의학자 허버트 프뤼덴버그(Herbert Freudenberger) 이런 상황을 ‘번아웃(burn-out) 증후군’으로 명명했다. 그야말로 ‘다 불타서 없어진다’는 뜻으로, 탈진 증후군, 연소 증후군, 소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권의정 원장(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은 “번아웃 증후군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 특히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30~40대 직장인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매우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심한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죠. 성취욕이 많고 매사 전력을 다하는 성격일 때 이런 상황을 더 자주 겪습니다. 자칫 번아웃 증후군 증세를 방치했다가 더 큰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고 설명했다.
혹시 나도 번아웃 증후군은 아닐까?
번아웃 증후군을 경고하는 조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든다. 둘째,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셋째, 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고 과거의 열정이 사라진다. 급속도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넷째, 만성적으로 감기, 두통, 허리통증 같은 질환에 시달린다. 다섯째, 감정 소진이 심해 ‘무기력하다, 우울하다’ 표현할 정도로 에너지가 없어진다 등이다.
권의정 원장(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은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최신판 질병분류(ICD-11)에서 ‘번아웃(burn-out)’을 장기간 직무를 행할 때 나타나는 직업적 현상(occupational phenomenon)으로 기술하면서 아직은 질환으로 볼 순 없지만 주의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WHO에서는 번아웃 증후군을 세 가지 양상으로 표현합니다. 첫째, 직무로 인해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탈진 상태, 둘째, 직업에 대한 부정적이고 냉담해지는 감정상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의 효율이 저하되는 상태를 말하죠. 만약 이런 세 가지 상황에 모두 포함된다면 번아웃 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하고 덧붙였다.
번아웃 증후군, 보통의 업무 스트레스와 달라
번아웃 증후군일 경우 갑자기 하는 일에 쉽게 짜증이 나고 사소한 일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하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업무 효율이 떨어지다 보니 자신감이 저하되고 직장에서 눈치를 보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징계를 받는 일도 있다. 여러 증상이 점차 증가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번아웃 증후군을 방치하는 이유는 이것을 일상적인 업무 스트레스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후군을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겠지만 몇 가지 구분점이 있다.
가령 스트레스는 지나치게 일에 몰입하면서 발생하는 반면,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할 수 없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스트레스는 민감해지는 감정 반응이 일반적이지만 번아웃 증후군은 심해질 경우 감정 반응이 둔해지고 무기력 등으로 행동이 줄어들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불안으로 표현되지만, 번아웃 증후군은 불안은 물론 혼자라는 생각, 자기 비하 등 우울감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작은 스트레스는 극복이 되면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일에 대한 자신감으로 변화될 수도 있지만 번아웃 증후군은 부정적 감정만이 정신을 지배할 뿐이다. 물론 스트레스가 적절히 해소되지 않고 오래 지속되면 결국 번아웃 증후군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번아웃’ 됐을 때, 전문가의 적절한 도움 필요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지 않기 위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직장 선배나 지인, 배우자 등에게 고민을 토로하며 조언을 구한다. 업무량, 야근 등 잔업을 줄이고 운동, 취미 같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휴식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러한 해결책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고 번아웃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효과가 없을 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을 실감할 때, 좀 더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권의정 원장(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은 “번아웃이 지속되면 우울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보통 번아웃에 이르기 전 사람들이 노력을 안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의욕, 의지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죠. 종종 번아웃은 조직의 문제로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리더는 번아웃을 경험하는 직원을 상담하고 일의 균형을 맞춰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회사가 이완요법, 건강한 식단에 대한 상담, 가족 문제에 대한 전문가적 조언 등을 제공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실제 몇몇 대기업들은 근로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EAP, Employee Assistance Program)을 시행하여 번아웃을 예방하고 있습니다.” 하고 조언했다.
번아웃은 개인은 물론 회사 측에도 유능한 직원을 상실하는 손해가 발생한다. 번아웃에 이르기 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회사로서도 유익하다. 예를 들어 번아웃을 경험하는 직원에게 당분간 일을 쉬게 한다든지, 단순 업무로 일을 변경해 주는 등 변화를 주는 것도 도움 될 수 있다. 번아웃이 느껴지는 당사자는 ‘반드시 이 업무를 해내야 한다, 상사와 동료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와 같이 자신을 옥죄는 지나친 책임감이나 기대치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일을 하는 목적은 일 자체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점을 기억하자.
도움말_ 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권의정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