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권의정 대표원장
유아나 소아는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집을 피우면서, 혹은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자해 행동을 보인다. 물론 지적 능력이 저하된 아동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자해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이들은 머리를 벽에 박거나 자기 머리를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 손가락을 심하게 물어뜯기도 한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이러한 자해에 변화가 오게 된다.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이면, 청소년 자해
청소년기의 자해는 칼로 손목이나 몸의 일부에 상처를 내는 행동, 담뱃불로 지지기, 뾰족한 것으로 찌르기 등 좀 더 위험하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들로 변하게 된다.
최근에 SNS를 통해 자해를 암시하거나 인증하는 게시물이 증가하면서 청소년들 사이에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선 학교나 교육부에서도 청소년 자살과 함께 자해의 심각성을 인지하여
학생 정신건강 실태 파악에 나섰고 설문 조사, 개별 상담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2016년 국내 여중생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에서는 대상자의 20%가 자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입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 어려서부터 지속된 경제적 곤란과 가정불화, 그로 인한 방임과 학대,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 등 청소년 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유발할 만한 여러 원인이 아이의 정신건강을 병들게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자해 또는 자살 시도로 병원을 찾은 만 9~24세 청소년은 8천828명. 일평균 26.9명으로, 5년 새 2배가량 증가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자해로 분노와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는 것
“자해는 고의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행위를 말하죠. 청소년 자해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정서적, 감정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절박한 시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자살과 구분해 ‘비자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즉, 죽겠다는 의도보다는 자신의 분노, 우울한 감정을 완화하기 위한 행위로 자해를 선택하는 것이지요.
강한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신체적 고통이 정서적 고통을 분산시키는 회피 수단이 되어, 이것이 습관이 되고 점차 강도가 심해지기도 합니다.” 권의정 원장(원주 좋은마음 정신건강의학과)의 설명이다.
청소년들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분노, 좌절, 우울 등을 경험할 때 이것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풀어내야 할지 모른다. 유아나 소아처럼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도 없고,
성인처럼 독립적으로 풀어낼 만큼 자아가 성장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과도할 경우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자신의 신체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비자살성 자해는 경계성 성격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등에 의한 부수적 증상의 하나로 보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는 비자살적 자해를 독립적인 증후군으로 간주하고 집중적 연구가 더 필요한 항목에 추가하였다.
자해 행위, 사춘기 일탈 행위로 넘기면 곤란
청소년의 자해 행위는 몇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우울, 불안, 긴장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고 완화하려는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를 조절할 힘이 부족할 때 강한 자극을 통해 회피하는 것이다.
둘째는 스스로를 체벌하는 행위이다. 특히 학대 받은 아동의 경우 학습의 형태로 자학을 보일 수 있다. 세 번째는 부모나 친구 등 타인의 관심을 끌고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권의정 원장(원주 좋은마음 정신건강의학과)은 “청소년들은 우울이나 불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회피할 목적으로 자해하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부모는 이를 그저 잘못된, 일탈 행위로 무심히 넘겨서는 안 됩니다.
신체를 훼손했다고 비난해서도 안 됩니다. 수면 아래에 있는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대개는 자해 청소년들도 자해가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을 조절할 힘이 없다 보니 반복적으로 자해를 하는 것이죠.” 하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1년 동안 5차례 이상 신체 표면에 고의적으로 출혈, 상처, 고통을 유발하는 신체 손상을 보였다면 자해를 의심할 수 있다. 이때 부모는 아이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할 수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자해 행위 뒤에 숨은 정신질환 조심해야
청소년 자녀의 자해를 알게 되었을 때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안정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환자와의 상담 평가를 통해 자해의 의도, 이유, 기분 등을 평가해 자살 행동인지, 비자살성 자해인지부터 파악한다.
만약 비자살성 자해로 판단될 경우 정신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정서조절요법 등을 진행할 수 있다.
권의정 원장(원주 좋은마음 정신건강의학과)은 “인지행동치료는 부정적인 감정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극단적이고 충동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부정적 감정이 경험될 때, 곧바로 자해로 이어지지 않고 보다 안전한 다른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자해에 대한 직접적 치료 약물은 없지만,
자해 청소년의 경우 우울이나 불안을 흔히 보이므로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 약물 치료를 함께 시행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고 덧붙였다.
부모는 자해하는 아이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물론 자해를 용인하라는 뜻은 아니다.
자해 행위를 비난하기보다 자해를 ‘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감정, 기분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춘기의 아이는 어른들과의 대화를 회피하거나, 재촉하면 더 말문을 닫을 수 있다. ‘네가 원할 때 언제든지 말할 수 있다’고, 아이가 안도할 수 있게끔 접근한다.
자녀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면 점차 부정적 감정을 완화할 수 있는 긍정적인 표출 방법을 찾도록 한다.
때때로 자해 청소년의 부모 역시 불안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함께 치료에 동참하는 것이 자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움말_ 원주 좋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권의정 대표원장